성숙한 기부문화를 위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부’란 아무나 할 수 있는 나눔의 행위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기부가 재벌들의 거액 기부이거나, 아니면 김밥 할머니나 삯바느질 할머니들이 안 쓰고 모은 뭉칫돈을 쾌척하는 등의 사연이 얽힌 경우에 한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건전한 기부문화는 특별한 소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참여로 가능해진다. 이러한 기부문화의 뿌리는 1762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건국정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부와 자원봉사’는 이들 청교도들이 신천지에 상륙할 당시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선포한 선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국가를 위해 자신의 수입과 시간의 일부를 헌납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인의 나눔의 정신이 이제는 생활화되어서 온 국민이 수입의 일부, 시간의 일부, 그리고 재능의 일부를 기꺼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바치고 있는 데서 우리는 배울 점이 있다.

근래에 와서 출범한 한국여성재단을 포함하여 여러 공익재단들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언론사와의 공동캠페인으로 확산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나라의 더 나은 기부문화 풍토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서 무척 기대된다. ‘기부란 액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돈만이 아닌 재능, 시간 등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라고 알리기 위해 작지만 아름다운 나눔의 사례들을 기사화하고 있는 데서 많은 사람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할 것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척박하다고만 여겨졌던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에도 서서히 훈훈함이 더해 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기부성향이 힘 있고 영향력이 큰 쪽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기부문화는 여전히 척박하다. 뿐만 아니라 현행 기부관련 제도나 세제는 육성이 아닌 규제일변도의 것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확산되어야 할 기부문화 조성에 있어서 언론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성차별이 없는 기부문화 형성,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이 함께 우뚝 서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쓰일 선의의 기부가 늘어나도록 언론이 기여해주기를 기대한다.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여성들이 약진하는 여성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을 체감하면서 사회 각계가 평등사회의 패러다임을 향해 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_2004

“돌이켜 그녀의 생을 보면 그 속에 오래된 미래가 있다.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만들어낸 인간에 대한 애정,

검소한 생활에서 찾아낸 생태적 지혜,

여성과 아이와 노인들이 존경받는 긴밀한 공동체적 삶,

그녀의 삶은 이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긴 여정이었다.”

  – 김현아 엮음, 『박영숙을 만나다』, 2008.

선생님의 육필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