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어머니, 일본의 마더 테레사

 

2002년 초여름 일본에 갔을 때 들린 서점에서 ‘70세를 넘어서 꽃피운 인생이 있다’라는 책 띠의 글귀에 눈이 꽂혔다. 그 책은 63세의 나이에 제8대 유엔난민기구(UNHCR)의 고등판무관으로 취임하여 10년 동안 활동하였으며 퇴임 후에도 경륜 있는 국제인으로서 국내외적으로 국제관련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오가다 사다꼬(緖方貞子)의 일과 삶을 소개한 것이었다. 그때 바로 70세였던 나는 하던 일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호기심에 차서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는 1970년도에 140만이었던 난민이 2000만명으로 늘어나면서 ‘난민의 세기’라 불리는 20세기 말 10년간을 해마다 지구를 세 번 도는 거리를 방탄조끼를 입고 누비면서 현장을 중시하는 난민구호활동을 전개한 남다른 판무관이었다. ‘난민의 어머니’ 또는 ‘일본의 마더 테레사’라는 칭호를 얻기까지의 그의 진정어리고 헌신적인 활약상은 강인하고 따뜻한 동양의 여성상을 국제무대에서 유감없이 과시한 것이다.

그는 판무관직에서 퇴임한 후 국가가 제의한 훈장수여를 ‘훈장은 일을 끝낸 사람에게 주는 영예’라고 거절할 만큼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음을 밝힌 의욕적인 사람이다. 그 무렵 일본에서 개최된 아프가니스탄 복구지원회의의 의장으로서 3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로부터 45억불을 모금해냄으로써 그의 탁월한 수완을 입증해냈다. 그러한 그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한다.

나는 실력의 기초를 다져야 하는 중고등학교 과정은 해방, 전쟁과 더불어 집안이 만주에서 평양으로 그리고 남한으로 옮겨 다니느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대학생활은 6.25가 남긴 상흔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학업보다 교외활동에 치중했던 나머지 자기준비를 어느 것 하나 철저하게 다지지 못한 결과, 나는 매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현실참여를 하면서도 제때에 해야만 하는 일은 했어야 했다. 후회한들 소용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학들에게 젊었을 때 해야 하는 자기준비의 시기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것뿐이다.

우리 모두가 오가다 사다꼬처럼 살 수도 또한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에게서 배우는 것은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업은 물론 심지어 노는 일을 위해서도 그 기량과 수단은 젊었을 때 익혀두고 다져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생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_2006

삶가족53r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