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치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먹고 입고 자는 걱정은 안 할 수 있어야 한다. 컴퓨터 시대, 자동화 시대 등등 온갖 현대 문명의 발전을 향유하는 20세기 저편에서 영양실조로 눈이 멀고, 점심을 굶는 어린이들이 있고, 전세값이 모자라 자살을 하는 사건이 속출하는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는 연일 갖가지 처방을 내리지만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수많은 이들의 생존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나 또한 국회 보좌진과 함께 며칠씩 밤을 지새가며 준비해서 이런저런 제안을 해도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무력감을 심하게 느낀다.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할까? 그런데 하루는 내 심정을 눈치 챈 동료가 이런 말로 나를 위로하였다. “달걀로 바위를 쳐도 계속 치면 언젠가는 바위를 깰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지순한 사랑, 이웃과 나라 사랑 등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배워온 덕목들에 균열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의 위험마저 외면해버리는 비도덕한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의 성마저 상품화시키는 사회에서 파생된 상호간의 불신 때문이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서로가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나는 젊은이들에게서 미래를 본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에의 끊임없는 갈망으로 도전하고 있다. 젊음의 특권이랄까, 하여간 주체적이고 진취적이다. 심지가 곧고 단단하여 믿음직스러운 이도 많다. 열정적이고 책임감도 있다. 그들은 실수도 하지만 곧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들은 더욱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차별을 받아온 여성들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국민은 자신들을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정치가를 원할 것이다. 여성들이 그 몫을 담당해야 한다. _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