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요 테마
지난 100년간의 역사는 갈등과 대결, 지배와 피지배, 경쟁과 소유 그리고 독점의 원리가 주도한 시대로서 인간의 자연착취, 강자의 약자억압, 생명경시 및 물질만능의 왜곡된 세상을 만들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인류가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세기에 인류가 바라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공생과 자율, 그리고 공유의 원리가 주도하는 평등, 평화, 화해의 세상이다. 20세기가 인류의 파멸이 예고된 시대였다면, 21세기에는 인류의 지속생존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21세기 한국사회를 과감한 민주개혁을 통해 참여와 공생의 사회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102개의 한국시민운동체는 “가장 작은 자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생적 복지사회, 자연과 인간,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경제적 권리, 그리고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고 시민의 참여가 국가운영의 기본원리가 되는 참여형 민주인권사회, 성에 근거한 왜곡된 남녀역할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 중앙집권주의, 위계주의를 넘어서서 분권적 자치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새 세기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합성한 ‘글로컬 glocal’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지구촌은 지구화와 지방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동향이 매우 강하다.” 글로컬한 시대는 강력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문제해결의 열쇠는 이제 정부가 아닌 세계시민사회와 세계시민운동이 쥐고 있을 정도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크다. 유엔기구들은 글로벌 차원에서는 물론 지역공동체 차원에서도 시민단체의 공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매사의 협의과정에서 지역NGO(유엔헌장 제71조), CBO(community based organization : 커뮤니티기반조직), GRO(grassroots organization : 풀뿌리조직)들과의 파트너관계를 구축해왔다.
새 세기를 맞이한 한국의 시민사회가 명실상부한 제3의 영역으로서, 제5권부로서 세계의 NG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국내외에서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민사회의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자원봉사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조성하여야 한다. 오래 전에 아놀드 토인비는 ‘참다운 평화유지에 필요한 조건’은 ‘자기중심의 극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기중심성의 극복이란 개인이나 공동체를 불문하고 자기 일, 자기 가족, 자기 회사 또는 지역, 나라, 민족, 인류, 지구, 동시대의 일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엔이 2001년을 ‘국제자원봉사자의 해(International Year of Volunteers 2001)로 선포한 것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의 시대를 시민들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열어보자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이 이타적인 사람들의 ‘바보들의 행진’이 아닌 필수적인 요건으로 높이 평가받는 분위기에서 이 해의 표어인 ‘나눔은 기쁨을, 참여는 보람을’이라는 의미를 시민들이 체험하게 해야 한다.
둘째, 시민, 기업, 정부의 파트너십을 대등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지난 세기를 정부와 시장이라는 쌍두마차가 이끌어 왔다면 새 세기는 시민사회가 국가운영에 파트너로서 참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구습의 체계로는 흡수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회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대등한 협력관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정보공유이다. 시민의 시정참여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와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정보공개제도는 절대 필요하다.
셋째, 기부문화를 활성화하여 시민운동의 재정을 확보하여야 한다. 기부문화의 4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은 각각 모금관련 제도로서 <Charity act> <Solicitation act>를 제정하고 시민사회의 공익활동을 위한 기부행위를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개정작업을 추진해가고 있다. 더욱이 시민운동단체가 소기의 목적 이행과 함께 모금활동까지 각자 해야 하는 우리와는 달리 이들 나라에서는 돈을 만드는 기구와 활동을 수행하는 기구가 분리되어 있어서 공익활동들이 각각 제몫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우선해야 하는 과제는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철폐하고 기부문화 확산과 독려를 위한 방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넷째, 행정이나 기업의 자정작용이 작동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기능은 필수적이다. 감시자로서의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행정이나 기업이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시민사회가 고발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협의와 교섭을 위한 언어개발과 건설적인 제언도 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나 기업의 대시민사회 알레르기 반응을 시정하는 데도 주효하다. 아울러 정책적 대안을 생산할 수 있는 민간의 싱크탱크로서의 역할도 강화되어야 한다.
다섯째, 시민운동의 국제연대를 강화하여야 한다. 오늘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어느 부문을 불문하고 지구규모의 상호의존관계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한 나라의 정책도 국제 동향을 무시한 채 결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 유엔이 NGO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NGO의 참여의 장을 계속 확대해가고 있으므로 국제적 차원의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변혁기에 처한 오늘의 사회는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력의 첫째 덕목은 “이대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결행이다. 시민운동의 중견활동가들이 재삼 다짐해야 하는 덕목이다. 21세기 시민 그리고 시민운동의 주요 테마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가 되어야 한다. _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