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의 문화에서 생명의 역사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욤 키푸로’라는 대속죄일을 해마다 지킨다고 한다. ‘욤’이란 ‘날’이고 ‘키푸로’란 ‘갚는다’ 또는 ‘변상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금식과 기도로 정중하게 지낸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날을 맞이하기에 앞서 갚을 것과 용서받을 것을 미리 다 해결하는 것을 관습으로 지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습은 성경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해마다의 의식에 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낡은 것의 악순환을 정지시키고 누적된 모순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희년 선포의 사전 작업으로 알고 있다. 마치 음력에서의 윤달이 달력의 차질을 조절해주듯이, 희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뒤틀려진 관계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로 인하여 제반 사회현상이 단순한 인권유린 차원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을 여러 각도에서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반생명적인 죽임의 문화현상으로 나타나, 이를 인식하고 잘못된 추세를 꺾기 위하여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생명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생명이 부당하게 상처받고 죽어가는 자리에는 언제나 여성들의 손길과 도움이 있었다. 여성들이 일으킨 생명운동은 처음에는 치유나 위로의 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구조악에 대한 도전과 개혁의 차원으로 변화되어갔다.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며 보존하는 생명의 담지자인 여성들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반생명적인 악의 세력과 싸우면서 생명을 옹호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여성의 연대성의 힘과 능력이 부각된다. _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