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버린 곳이 그대들의 일자리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한국사회와 많은 제약 속에 있는 학원에서의 학생운동을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독청년들이 참여하는 학생기독교운동을 전망하자면, 특별히 그 신학적 근거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학생기독교운동의 신학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만인사제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선교’란 1952년도 독일에서 열렸던 선교대회에서 선교의 목적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명확해졌다. 중세 서구의 정교분리 주장에 의해 교회와 세속을 완전히 구분함으로써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역을 교회 안으로만 제한하고 있던 교권주의자들의 주장을 뒤엎고,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역사와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교회 형태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건을 통해서 선교하신다.”고 선포한 것이 바로 ‘Missio Dei’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가 바로 학생기독교운동의 바탕이다.
선교란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사회는 교회의 정복대상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선교는 한국의 역사 현실에 기초해야 하며, 학생기독교운동의 활동무대는 교회나 학교만이 아니라 전 민족, 전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한편 종교개혁 시에 루터에 의해 선포된 ‘만인사제론’은 중세 서구에 교회법으로 법제화되었던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중적인 우열구조를 깨고 피선교자, 순종자의 자리에 머물러있던 평신도들을 ‘선교자’로 해방시킨 폭탄적인 선언이다. 본래 평신도(Layman)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이 선언으로 인해 YWCA나 대학Y운동이 평신도 운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상황에서 구원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2000년 전의 예수가 아니라 현존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을 기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Layman으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 예속된 손과 발이 아니라 미션(Mission)을 가진 사람으로,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자로 민족사회와 산업화 과정에서 겪고 있는 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산업선교나 인권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관여하면 제재를 받게 되고 그러니까 후퇴하니 운동이 유명무실해진다. 우리는 이 와중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세상이 버린 곳이 학생기독교운동의 일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_1983





